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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최소리의 '두드림' (소리 감동의 도가니에 초대합니다.)

솜 사 탕 2005. 11. 5. 14:33


 

 

최소리의 '두드림' 영상입니다.

1.격외선당 (Dharma's Best Shrine)

2.기 (The Life Force)

3.번민 (Agony)

4.비단길 (Silk Road)

5.히로시마의 기억 (Remember Hiroshima)

6.개기일식 (Eclipse)

7.꽃길 (Flowery Road)

8.비단길 (The Silk Road)

 



인류에게 목소리 다음으로 오래된 악기는 타악기라 했던가.

두드림, 그 날(生)소리
의 원초적 미학이 삶의 전부인 이가 있다. 최소리!!

최소리(최경섭)의 음악 인생은 초등학교 시절
도시락 뚜껑과 책상을 두드리며 시작 됐다.

중학교를 마칠 무렵 부모님이 소 판 돈을 몰래 훔쳐
전라도 고향 땅을 떠난 그는 자장면.신문 배달에서부터 막노동까지
닥치는 대로 일하면서도 오로지 드럼 두드리는 맛에 살았다.

12살에 북채를 잡고, 특히 92년부터 97년까지

입산하여 몰두하고 찾아 헤매던 것은
"우주 만물의 에너지를 각각의 특이한 소리로 되살리는 작업"

이었다고 한다.

그러다가 지리산에 들어가 움막을 짓고 3년간 독학으로

악기 공부를 계속 했다.


문득 공부를 더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음악책에 나오는 영어단어들이 계속 걸렸던 것이다.
그래서 다시 고향으로 돌아가 고등학교를 마쳤다.

1989년 유현상이 빠진 백두산의 3집 앨범에 김도균과

함께 참여하여 92년까지 인기 드러머로서 경제적으로나

사회적으로 모처럼 여유를 누렸다.

그러나 좀 더 자신의 색깔이 있는 음악을 하고 싶어

두번째 산행하여 5년간 가평 산에서 손수 별의별

악기를 만들며 음악을 연구했다.
마침내 97년 첫 음반 "두들림" 을 냈다.

북채를 여러 개 쥐고 여러 악기를 두드리는 타악기

연주자라는 점에서 세계적인 프리-재즈 타악연주자인

"김대환"을 떠올리게끔 한다.

하지만 김대환이 서양적이면서 재즈어프로치가 강하다면
최소리는 가장 한국적인 두들림을 우리에게 들려준다.

요즘 "난타"류의 무국적 타악연주가 마치 한국의

소리인양 설쳐대는 모습과 비교하여 볼때

그의 음악에서 강한 한국적 정체성을 느끼게 된다.

그는 7년 전부터 소음성.신경성 난청질환을 앓고 있다.
하지만 "완전히 청력을 잃는다면 오히려 상상의 소리를

더 잘 들을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면 편안하다"는 그다.

온몸을 전율케 하는 그의 음악은 그런 "자유정신"에서 최소리는
현재 고향인 남도의 장단과 록 드럼의 비트…

그 외의 다양한 음악과의 접목을 시도한 크로스 오버적인

타악을 시도 하고 있으며 자유인이라는 밴드를 결성해

이미 다양한 실험적인 콘서트를 수 회에 걸쳐 진행하고 있다.

 
출처 : 내가슴속의 램프
글쓴이 : 엘로이즈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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