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표현과 사랑생각 ♡/담배.술 미워요

어느 사람의 금연 실패기와 성공기라네~~ㅎㅎ

솜 사 탕 2009. 10. 17. 14:27

 

칠전팔기의 정신으로 금연을 하지는 않았습니다.

 

사실 금연을 할려고 독한 맘 먹은 적은 그다지 없었습니다. 그냥 해 봐야지..끊어봐야지..라는 나름 독한 마음은 먹었지만 이번에 못 끊으면 죽는다...혈서를 쓴다..이런 식으론 하지 않았습니다.

 

여하튼 35살의 나이이지만 담배를 핀지 15년이 넘었습니다.

 

처음 끊을 수 있었던 시기는 논산훈련소였습니다.

 

지금은 전부 다 금연인지 모르겠지만 당시 훈련소는 소장(사단장)의 운영방침에 따라서 금연이 되었다가 흡연이 되었다가 했습니다.

 

즉 담배에 한이 맺힌 사단장이면 금연이고 아니면 흡연이고 그랬죠.

 

당시 훈련소때 담배를 끊을 수 있는 기회를 가진 훈련병이 대부분이었지만 4주 기본훈련(+ 박격포는 2주 더 플러스)이 끝나고 나면 총각에 한이 맺힌 처녀귀신마냥(아니면 처녀에 한이 맺힌 총각귀신,남녀평등주의자임) 담배를 계속 피면서 단 하루에 3-4갑을 피어버리죠.

 

물론 저 역시도 그랬습니다.

 

그렇게 금연에 별 생각이 없던 시기라 금연의 좋은 기회를 놓치고..

 

제대 후 1999년 뉴질랜드로 배낭여행을 가면서 몸에도 좋지 않은 담배를 끊어야지 하면서 면세점 담배도 사가지 않고 그냥 있던 담배 가지고 갔는데 타지생활의 외로움과 영어를 하나도 할 줄 모르는 상태에서 갔던거라서 엄청난 스트레스에 도저히 끊지를 못했습니다.

 

하지만 뉴질랜드 담배 한갑에 당시 5-6천원(현가치 만원 이상임) 이상 주고 한값을 사서 피어본 결과 도저히 피지를 못하겠더군요.

 

당시 돈이 없어서 노숙도 가끔씩 하고 밥도 아껴먹고 배낭여행을 했는데 한값에 7불(뉴질랜드달러)을 주고 구입을 하기에는 너무나 큰 무리였습니다.

 

결국 저는 돌돌 말아피는 담배를 선택했고 귀찮은 수작업이지만 그래도 우리나라 담개값으로 필수가 있었기에 만족을 하고 피었습니다.

 

이 담배 피다가 우리나라 담배 얻어서 피어보면 진짜 시가 문 기분이 듭니다.

 

 

그렇게 금연에 실패하고...

 

6개월 뒤 캐나다로 배낭여행을 가게 되었습니다.

 

캐나다 갈때도 금연을 해야지..라고 생각했지만 뉴질랜드에서 멍청이 같은 행동을 반복하지 않을려고 면세점 담배를 1보루 구입해서 가지고 갔습니다.

 

이걸 다 피고 나면 금연한다. 이 생각을 가지고요..

 

비록 영어실력도 늘고 여행도 할 줄 알다보니 스트레스는 덜 받았지만 역시 안 되더군요.

 

결구 말아피는 담배를 또 구입을 했는데 그 모습을 보니 제 자신이 너무 한심해 보이더군요.

 

그래서 록키산맥을 등산하던 중....담배를 다 태워버리고 금연을 시도했습니다.

 

그렇게 산행을 끝나고 도심지에 왔을때에 저도 모르게 쓰레기통에 있는 꽁초를 피게 되었고 이런 제 자신이 너무 밉고 처량하고 한심해서 결구 다시 말아피는 담배를 피게 되었습니다.

 

결국 이때도 실패...

 

그리고 학교생활, 직장생활 하면서 전부 다 실패..

 

2005년경이었나..담배값을 2000원에서 2500원으로 500원 올렸을때 일입니다.

 

정말 열받더군요. 담배를 끊게 할려면 한번에 두배를 올리든지 아니면 한 갑에 만원을 해서 아예 못 피게 하든지 안 하고 딱 적응해서 필 수 있을 정도로 올리는 정치인들이 너무 미웠습니다.

 

그래서 제 자존심이 허락하지 않아서 끊을려고 했습니다.

 

때마침 분 금연 열풍...각 보건소에 금연클리닉도 운영한다고 하더군요.

 

속으로 왠 쾌재야~~ 하면서 제가 살고 있는 울산시 중구 보건소를 찾아갔습니다.

 

찾아갔더니만 중구보건소는 운영을 하지 않는다고 하네요.

 

금연클리닉 운영은 중앙에서 일부 지원을 하고 나머지는 지방자치단체에서 부담을 해야 되는데 울산의 경우 공단이 많은 남구,북구,동구에는 세금이 넘쳐나서 정부에서 시행할때에 바로 운영을 했고 그에 반해서 일반 시민들만 살고 있는 중구, 촌사람들만 살고 있는 울주구는 진행을 하지 못했습니다.

 

너무 분노한 나머지 왜 똑같이 세금을 내고 더군다나 저는 남구에 있는 회사에 다니고 있으면서 똑같은 울산시민으로써 이런 혜택을 받지 못하는건 이해를 못한다고 건의를 했습니다.

 

같은 시민이면 똑같이 혜택을 받아야 하고 이런 좋은 정책을 구별로 운영을 하는건 이해가 되지 않는다고 보건복지부,시장,중구청장에 다 건의를 했습니다.

 

결국 그 다음해부터 운영을 하기로 했고 대신 그 다음해에 가기 힘든 사람들은 중구 사람들은 남구보건소에 가서 받을 수 있도록 조치를 취해주었더군요.

 

저로 인해서 보건복지부에서 진행을 한 반쪽짜리 금연클리닉이 울산시 전체로 진행이 되었습니다. 너무 뿌듯했죠.

 

사실 지금 MB 정권에서는 상상도 못하는 일이었지만 당시에는 건의를 해서 타당성과 합리성이 있으면 제대로 적용이 되었던 시기이기에 가능했습니다.

 

결국 저는 뭔가 이루었는 성취감에 담배를 피면서 스스로 만족을 하고 결국 남구보건소에 가지 않았습니다.

 

하던 지럴도 멍석 깔면 안 한다고 제가 딱 그 꼴이었습니다.

 

결국 그 해를 넘기고 다음 해 4월경에 별 생각없이 다시 중구보건소에 찾아가게 되었고 금연클리닉을 받게 되었습니다.

 

무료로 패치를 주더군요. 1주일에 한번씩 찾아가면 되고 1주일치 분량을 주었지만 저 같은 경우에는 아껴쓰면서 2-3주에 한번씩 갔습니다.

 

그런데 담당하시는 담당자분께서 얼마나 자주 전화를 주시는지 처음 3주차까지는 거의 2-3일에 한번씩 전화를 줍니다.

 

"윤정욱님..포기하시면 안 됩니다."

 

"왜 안 찾아오세요..."

 

"혹시 담배 피시는거 아니시죠"

 

"하루하루가 힘들더라도 금연을 성공했을때의 자신의 모습을 상상해보세요"

 

이런 식으로 시도때도 없이 전화주면서 격려와 협박(?)등을 하면서 저를 귀찮게 하더군요.

 

결국 제 의지도 의지이지만 이렇게 도와주신 분이 있었기에 금연을 하게 되었고 지금 4년 넘게 금연을 하고 있습니다.

 

저희 집안이 꼴초 집안이라서 아버님,형,저 3명 모두 담배를 피었는데 아버님은 건강이 안 좋으셔서 담배를 30년 넘게 피어온걸 끊으셨고 형도 없는 형편에 아이도 있고 하다 보니 끊게 되었습니다.

 

저는 끊을려고 했을때는 안 끊어지고 별 생각없이 찾아간 금연클리닉과 그리고 담당지원분의 도움으로 끊게 되었죠.

 

지금도 담배를 피고 싶은 생각이 가끔씩 들고 꿈에서도 저도 모르게 담배를 피는 꿈을 꾸면서..

 

'아~ 4년동안 끊은 담배를 다시 피다니...' 이러면서 후회하면서 꿈에서 깨어났던 적도 종종 있었습니다.

 

여기서 담배를 끊지 못한 분은 편안한 마음에 부담없이 금연클리닉을 받아보기를  권해드립니다.

 

독한 마음에 시도를 하면 그 독한 마음이 오래 가지 않습니다. 그래서 담배 끊은 사람보고 독하다고 하던데 저는 반대로 독하게 마음 먹지 않고 편안하게 마음을 먹고 끊기를 권해드리고 싶네요.

 

그리고 마지막으로..

 

인간이 얼마나 이기적이냐 하면...

 

제가 담배를 필때에 담배를 피지 않는 회사 형들이 잔소리르 하거나 담배를 끊어라..어쩌구 저쩌구 하는 소리를 들을때마다 짜증이 났는데 요즘은 제가 담배를 피를 사람이 얄믿고 짜증이 나더군요.

 

여하튼 담배를 끊지 못한 분들은 편안한 마음으로 금연을 시도해보세요..